류인순 시인 79

양평 형제봉에 올라

양평 형제봉에 올라 / 류인순 하늘에 솜사탕 띄우고 두물머리 눈으로 당겨 보는 곳 한 손으로 가려지는 저 아래 세상에서 아옹다옹 덧없어라 솔가지에 오도카니 뜬금없이 앉은 공룡 쉬어가라 속삭이네 생방송인 삶의 무대 지휘자도 연주자도 오롯이 내 몫인데 달음질하는 시간 속 쉼표 하나 찍고 가자 인생은 긴 여행이다.

정방 폭포

정방 폭포 / 류인순 한라산자락 돌고 돌아 서귀포 계곡을 지나 세상사 뭇 사연 담아 바다에 몸 풀러 가는 길 시냇물로 졸졸 흐르다 어이쿠, 갑자기 벼랑 끝 사정없이 툭 떨어지네 온 정신 아득하고 심장 쿵쾅거리는데 하얀 비단 내린다며 환호성 지르는 그대여 어제도, 오늘도 먼 훗날 그날까지 변함없을 내게로 다시 와요 그대 쉼 필요할 때.

고장 난 알람

고장 난 알람 / 류인순 가을과 겨울 사이 깊은 산 뜬금없이 홀로 핀 진달래꽃 서릿바람이 툭 건드니 가냘픈 몸 파르르 떨며 힘겹게 견디고 있다 고장 난 계절 알람 제멋대로 울려대니 너 또한 헷갈렸을 터 사람 눈길 뜸하다고 홀로 외로이 서 있다고 주눅 들지 말지어다 찬 서리 내려 너의 몸 생채기 나기 전 내 눈에 오롯이 담았다 누가 뭐래도 한 가슴 꽃물 들였으니 네가 온 명분 충분하다.

겨울 채비

겨울 채비 / 류인순 계절 알람에 농익은 색색 단풍 하나둘 잎 떨구어 칼바람 맞설 채비 하고 가로수 은행나무 춤추는 소슬바람에 파르르 떨며 노란 보석 떨구고 있다 비단 같은 억새 겨울바람에 꺾일세라 낭창낭창 온몸 흔들어 다이어트 시작하고 가을은 보따리 싸서 떠날 채비 한창인데 어느새 겨울이 힐끔거리니 내 영혼 뜰 안엔 온기 채우려 햇볕보다 따뜻한 너를 들여놓는다.

가향 詩 향기 2021.11.16

숲에 두고 온 비밀

숲에 두고 온 비밀 / 류인순 가을 설악산 중턱 울산바위 가는 길 숲에서 만난 돌탑 하나 하나둘 그 누군가 비밀스러운 소망 아슬아슬 쌓아 놓았네 인생길 길목마다 수 없이 낚은 욕심 비우고자 떠난 그 날 켜켜이 쌓은 소망 묵직한 돌탑 위로 또 다른 소망 올라가고 툭툭 비워 낸 자리 아뿔싸, 욕심 하나 또 담았네 비밀스러운 나의 작지만 큰 그 무엇보다 간절한.

가향 詩 향기 2021.11.09

비비추 보랏빛 향기

비비추 보랏빛 향기 / 류인순 비비추 보랏빛 향기 삼복더위 즈려밟고 여름 뜨락에 꽃대 올려 빗장 풀었다 진초록 잎 사이 관심받기 힘들어도 수수한 모습으로 싱그런 향기 품은 꽃 하늘이 내린 인연 곱디고운 그대 닮아 내 가슴 온통 보랏빛 행복 물들이고 여름 한가운데 서서 비비추 나팔 불며 매미 울음소리 조곤조곤 줍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