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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팝나무의 계절

가향 류인순 2014. 1. 16. 17:07

 

 지금쯤

삼남지방에는 가는 곳마다

이팝나무 꽃이 한창이겠지만

제주에는 드문데,

도남동 어느 다세대주택 입구에

누가 향수를 달래려고 심어놓았는지

해마다 나의 사진 모델이 되어준다.

 

무심코 지나치다

온몸을 하얀색으로 덧칠한 이팝나무를 보면

어떻게 저렇게 흴 수 있는지

보릿고개의

쌀밥 덩어리로 보여

눈으로 마구 퍼먹었는지 모를 일이다.  

 

 

 

♧ 이팝나무 - 권오범

 

냉동돼 비몽사몽 했을 희망

5월의 친절한 해동에

한소끔 끓어오른 입하

 

은근한 불땀으로 한 사날 뜸 들여

군침 돌게 고슬고슬

싱그러운 양푼에 담아놓은 고봉밥

 

오가는 바람들이 입맛 따라

달빛 별빛 날비에 말아

며칠씩 포식해도 줄지 않아

 

오도카니 햇볕에 비벼먹다

도리깨침 등쌀 못 이겨

징글징글한 보릿고개 너머로 달려간 내 넋   

 

 

 

♧ 이팝나무 꽃필 무렵 - 가향 류인순

 

백로의 힘찬 날갯짓 시작으로

진양호의 꿈같은 하루가 열리면

은빛 물결 방금 건져 올린 멸치떼처럼 싱그럽다

지리산 골짜기 맑은 물 머물다 가는 곳

천왕봉 산들바람 쉬었다 가는 곳

남강 상류 진양호에 오월이 오면

소담스레 핀 이팝나무 꽃 쑥버무리 같다

능수버들 긴 머리 초록빛 더할 때

어릴 적 소풍 날 호수에서

유람선 타던 기억 찰랑거린다

콧구멍 크게 벌렁대게 하는 진한 향기

아카시아 우거진 호반을 걸으며

가위바위보 게임으로 잎 따기 하던

더벅머리 옆집 철민이 머리카락에서 나던 비누냄새

오늘도 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먼 훗날 그때도 나겠다.   

 

 

 

♧ 이팝나무 아래서 - 김병손

 

세상일 몇 겹으로 접어

꾹 눌러 앉은 할머니가

꽃무늬 보자기에서

앞산의 푸름을 풀어 놓는다

 

풍만해지는 능선을

허기진 치마폭에 담아서

마루에 펼치면

우리들은 떡갈을 찾아

어머니가 해매이던

숲길의 아찔한 향기를 맡곤 했다

 

산과 들에 섞이는 싸리순 냄새를

치마 끝에 척척 감으며

장으로 바쁜 걸음 옮기시던

어머니

 

아파트 담 밑에서

세상을 눌러 앉은

할머니의 치마폭엔

산그늘이 길을 풀고

달빛을 먹어도 먹어도 야위어가는

이팝나무 아래서

선돌마을 산 한 자락을 사고 있다.  

 

 

 

♧ 이팝나무 - 김숙자

 

  용추사 이팝나무에 키 큰 물소리 나네, 유월 바람 불어와도 초록보다 더 푸른 삼매에 들었나, 봄은 다 가고 유월 더위 때문일까, 키 큰 이팝나무 맥 풀어져 하얀 삼매에 들어 있네, 하늘에 닿은 눈꽃등 아래 소쩍새 소리 사이로 아버지 걸어오시네, 아버지 발자국에서 소쩍 소쩍 소리가 나네

 

  아버지 소쩍새 소리를 양팔 간격으로 떼어 놓으시네 굳게 잠긴 사락정 대문 밖 마당에 개량종 채송화가 빨간 베갯모를 펼치네, 사르르 유월바람 오디 먹은 입술로 잔 발을 내리네, 파뿌리 같은 잔 발로 어린 모를 쓸다가 아버지 하얗게 이팝나무 휘둘러보고 광목처럼 길게 길게 언덕 넘어 가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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