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향 류인순 2012. 4. 23. 16:50

          
          자주괭이밥 꽃
                                             가향 류인순
          복사꽃 웃음보 터지던 날 
          관음죽 화분에 이방인 더부살이 시작하네 
          지난가을 열어 둔 창문을 통해   
          바람에 업혀 놀러 왔던 홀씨 하나
          겨우내 흙 속에 숨어 웅크려 있다가 
          햇살의 간지럼 참지 못해 둥근 등 밀어 올리며
          머리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내고 일어서네
          이내 연둣빛 가녀린 몸짓으로  
          주인 옆에 버젓이 자리 잡고 앉아 
          생명의 물 넉살 좋게 넙죽넙죽 받아먹더니
          속으로 살찌우고 하트 모양 초록 옷 
          넘실넘실 차려입고 긴 목 빼고 우아하게
          자주색 꽃잎 열어 도도한 눈인사 하네 
          하루 일 다한 햇살이 서산에 숨어들면 
          옷자락 살포시 접어 꽃잠 자다 
          새벽 동트면 다시 일어나 웃음 짓는 모습에    
          주인은 감히 쫓아내지 못하고 도리어
          자리 한쪽 내어주며 도란도란
          분홍빛 사랑 익히고 있네
          그 모습에 시샘하듯 바람이 툭 건들고 지나가네.